Wednesday, February 6, 2013

벤지의 거세

오늘 이 부분과 관련 출판사와 얘기할 일이 있었습니다. 내친김에 해당 본문의 거세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푸엔테스, 마르케스, 스타이런 등의 작가들과 가진 만찬석상에서 책 이야기가 나오자 그대로 벌떡 일어나 "벤지의 독백"을 줄줄 암송한 일이 있었다는 포스트를 얼마 전에 올렸습니다만, 그게 어떤 부분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이 포스트에서 다루는 단락임이 분명합니다.

벤지의 누나 캐디는 1910년 4월 25일에 결혼합니다. 그녀 나이 18살 때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벤지는 15살입니다. 캐디가 결혼해서 집을 떠나고 난 뒤의 일입니다. 벤지는 캐디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올 때쯤이면 대문으로 캐디를 마중나가곤 했는데 이제는 마중나가도 누나는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이죠. 무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상실감이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나 벤지는 그게 누나 캐디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 시간만 되면 본능적으로, 습관적으로, 대문으로 가는 것입니다. 대문은 잠겨 있습니다.

이 날도 벤지는 대문으로 나갑니다. 여학생(버제스의 딸)이 누나가 그랬듯 하교길에 집앞을 지나갑니다.  여학생들에게서 캐디의 모습을 보았는지,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집 밖으로 나갑니다. 공교롭게 문이 잠겨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벤지는 도망가는 여학생을 쫒아갑니다. 벤지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학생을 범하려 했는지 그냥 팔뚝만 잡았는지 모르지만 여학생은 비명을 지릅니다. 벤지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합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그 환한 모양들이 멈추기 시작했고" 벤지는 무엇에선가 "빠져나오려" 합니다. 여학생의 비명을 듣고 온 어른들에 의해 맞아 쓰러졌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장면이 바뀝니다. 실신했다가 수술대에 누운 것으로 보입니다. "환한 모양들"은 수술대 위의 밝은 조명등일 것이며, 벤지는 마취시키기 위해 코와 입에 대려는 것을 "떼어내려"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곧 마취되고 그 "환한 모양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취에 취해 의식을 잃어가는 상황에 대한 벤지의 독백은 마치 꿈 속에서 절벽으로 떨어지며 하늘의 불빛이 소용돌이 치는 것을 보는 듯합니다. 이 벤지의 독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구문이지만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대문을 열었고 그들은 멈추더니 돌아섰다. 나는 말하려고 했다. 말하려 하며 그녀를 잡았고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말하려 하고 또 말하려 했는데 그 환한 모양들이 멈추기 시작했고 나는 빠져나오려 했다. 나는 그것을 얼굴에서 떼어내려 했지만 그 환한 모양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언덕 위 그것이 갑자기 떨어져나온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나는 울려고 했다. 하지만 숨을 들이쉬었는데 숨을 내쉬지 못해 울지 못했다. 그리고 언덕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는데 언덕에서 환하고, 빙빙도는 모양들 속으로 떨어졌다. (71:1-8)
I opened the gate and they stopped, turning. I was trying to say, and I caught her, trying to say, and she screamed and I was trying to say and trying and the bright shapes began to stop and I tried to get out. I tried to get it off my face, but the bright shapes were going again. They were going up the hill to where it fell away and I tried to cry. But when I breathed in, I couldn't breathe out again to cry, and I tried to keep from falling off the hill and I fell off the hill into the bright, whirling shapes. (53:6-15)



그리고 벤지는 성인이 되어 1928년 4월 7일 현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벗은 아랫도리를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을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는 것입니다.

내 옷이 다 벗겨졌고 나는 나를 바라보고 울기 시작했다. 조용히 해, 러스터가 말했다. 그거 찾아도 아무 소용 없어. 없어졌다구. (97:1-2)
I got undressed and I looked at myself, and I began to cry. Hush, Luster said. Looking for them aint going to do no good. They're gone. (73:30-32)


가슴 아픈 에피소드입니다.

10 comments:

  1. 캐디한테서 나무 냄새가 났다. 구석은 어두웠지만 창문은 보였다. 나는 슬리퍼를 쥐고 거기에 웅크리고 앉았다. 나한테는 그게 보이지 않았지만 내 손에는 그게 보였고, 밤이 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어두워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혹 이 장면 아닐까요? 대통령이 만찬에서 거세당한 장면을 암송했을건 같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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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95쪽 2째 단락이로군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 단락도 역시 아름다운 단락입니다. 한편 91쪽의 2째 단락, 또는 다른 구절이었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어요.

      저는 71쪽 단락이 거세 에피소드지만 원문이 시처럼 아름다워서 클린턴 대통령의 기질이라면 내용과 상관 없이 그 단락을 읆었을 것 같아요. 그 자리는 소설가 몇 명과 함께 한 자리였으니까요. 그리고 사실 이 단락이 거세 에피소드라는 건 이 작품을 웬만큼 깊이 읽지 않고는 '추측'하기 쉽지 않아요.

      아무튼 독자님의 추측도 똑같이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리와 분노"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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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벤지의 독백 중 좋은 문장들이 많아서 클린턴이 어떤 부분을 암송했는지 흥미로워요. ^^
    저는 다 읽고 나서도 벤지가 거세당했다고 꿈에도 몰랐던 1인이요;;;
    알라딘에서 거세당했다는 글을 보고 진짜 식겁!!
    최근 본 소설중에 후폭풍이 가장 셌던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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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석에서 편하게 저녁식사를 하다가 영감이 발동해 즉석에서 암송한 걸 보면 매우 인상 깊은 부분이었겠죠? 저도 그게 실제로 어떤 단락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나중에 알 만한 사람에게 기회가 되면 물어봐야겠습니다. 아무튼 클린턴, 대단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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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난해함에 어쩌다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분명 몇 시간 전에 저 부분을 읽었으나 '거세'를 암시하는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포도주 같다는 의미를 희미하게나마 알겠네요. 갑자기 난해했던 이 책을 읽는게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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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처음에는 좀 난해해도 뒤로 갈수록 괜찮아질 겁니다. 퀜틴 섹션을 읽으실 때 눈으로 읽어 언뜻 알 수 없는 단락의 경우, 작게 소리 내어, 의미가 통하는 구절 별로 끊어가며 빠르게 다시 한 번 읽으시면 어렴풋이 의미가 드러나는 데도 있을 거예요. 앞의 문장이 잘렸다가 다른 문장이 들어가고 다시 그 앞의 문장이 뒤에서 연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 '악명' 높은 의식의 흐름 때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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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의 고통,

    나의 사랑,

    윌리엄 포크너,

    당신의 위대한 작품은 영원하리니 !

    Gene 님,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하고 건강하시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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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친절하신 독자 님도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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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Gene님의 친절한 설명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네요.

    종종 들르겠습니다.

    여기, 부산은 바람이 시원하게 붑니다.

    바람이 분다. 시원하다. 어디든 훨훨 날아 가고 싶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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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발레리군요. Le vent se lève ! . . . Il faut tenter de vivr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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