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2, 2013

캐디한테서 나무 냄새가 났다.

<소리와 분노>를 시간과 관련시켜 어렵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시간을 다루는 기법이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게 핵심은 아닙니다. 이 소설의 핵심은 캐디입니다. 포크너의 소설에서 퇴락하는 백인 가정과 흑인 하인들은 이야기의 틀(frame)을 제공해줄 뿐입니다. <소리와 분노>에서는 콤슨 집안의 영락과 하인 (딜지) 깁슨 가족의 수난이 그 틀입니다. 핵심은 캐디입니다. 이 점을 놓치면 소설 전체를 놓치는 것입니다. 현재와 과거라는 시간, 의식의 흐름도 도구일 뿐입니다. 소설의 네 섹션은 모두 캐디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벤지 섹션과 퀜틴 섹션의 시간대를 파악하는 것은 조금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간대를 파악하는 단서는 해설에 주어졌습니다. 그 단서는 포크너가 독자를 위해 '심어놓은' 것입니다. 시간대의 어떤 부분은 도움이 필요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작의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의미상 고의적으로 모호한 부분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는 구절이나 문장이 많습니다. 대부분은 번역에서 걸렀지만 살릴 수 있는 것은 살렸습니다. 그런 것들도 작품을 감상하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 전체에서 캐디를 찾으려고 하면 됩니다. 

5 comments:

  1. 안녕하세요, 역자 선생님 ^^ 독자입니다. 포크너의 명작을 한국어로 잘 옮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을 읽다가 궁금증이 생겨 문학동네 카페에 질문하다가 이 블로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 198쪽 밑에서 넷째줄: 응 응 응 응

    여기서 가운데 '응 응'만 돋움체로 되어 있어서 저는 오타라고 생각하고 지적했는데 아래 답을 받았습니다. 저렇게 깊은 의미가 있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그저 오타라고만 생각했네요. --;

    * 카페 답변
    소리와 분노에는 성경뿐 아니라 엘리엇이나 조이스 등 다른 작가들의 작품의 구절 등을 인유한 부분이 여럿 있습니다.
    팔랑팔랑님께서 문의하신 부분은 원문이 "~the yes Yes Yes yes~"로, 퀜틴이 "비밀스런 격동"과 "맞물린 호흡"을 상상하다가 "응 응 응 응"이라는 긍정의 말로 환상을 끝맺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제임스 조이스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문장이자 몰리 블룸의 독백의 끝인 "yes I said yes I Will Yes."를 차용해 쓴 것으로 에서는 몰리 블룸이 성(性)을 긍정하면서 쓴 표현입니다. 저희는 대문자를 마땅히 표현하기가 어려워 강조체로 표시했습니다.
    ---

    이 답변을 보면 포크너는 조이스 문학에 굉장히 조예가 깊은 것 같습니다. 퀜틴의 대사를 몰리 블룸의 독백에서 차용했다니까요. 율리시스를 읽어 본 적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 역자님도 저렇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그냥 고전을 좋아하는 독자입니다.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는 몇 년 전(당시에는 음향과 분노) 읽다가 중도 포기하고, 이번에 다시 도전했는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소리와 분노처럼 확실한 스타일과 아우라 있는 작품이 맘에 오래 남더군요. (오히려 책에 조예가 있다는 분들이 너무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는 걸 보면 저는 역시 조예는 없는 듯요. ㅋㅋ)
    제가 다니는 회사에는 독서모임이 있는데 이번 달에 저는 소리와 분노로 독후감을 준비중입니다. 앞으로 종종 질문 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18쪽 밑에서 아홉째줄을 보면

    "그 아이가 "

    문장부호 없이 왜 저렇게 빈칸을 만들어 놓는지 궁금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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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율리시즈의 몰리 블룸 독백 인유 맞습니다. 카페의 대답은 사실은 제가 각주에 달았던 것이니 당연히 맞다고 해야겠죠? ^^ 각주를 줄이는 과정에서 본문에 "긍정의 말"이라는 말을 넣고 각주를 빼느냐, 아니면 그 반대로 하느냐를 놓고 전자로 결정된 것입니다.

      "그 아이가 "에서 '아이가'와 인용부호 사이에 빈칸이 있는 것은 콤슨 부인이 "그 아이가"라고 하고 다음 말을 이으려는데 딜지가 "물론이죠"하고 말을 가로챘음을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이 두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자세히 따로 포스트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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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답변 감사합니다! 너무 상세하게 답변해주셔서 좀 놀라긴 했네요. ^^;; 언젠가 그 어렵다는 율리시스를 시도해봐야 하는 건 아닌지... ㅋㅋ
    카페에도 적었지만 아무리 문학이라도 어렵다는 작품은 자세히 주를 달아주는 게 독자에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카페를 보면 출판사에서 이 책이 어렵다고 직원들이 그러는데, 저 같은 비전공자 독자가 주가 좀 많았으면 좋겠다고 하면 그건 문학이기 때문에....이런 식이더군요. 그렇게 어렵다니깐 주를 더 많이 달면 되지 않나 하는게 저같은 보통 독자의 생각일 겁니다. "응 응 응 응"처럼 오타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는 부분들에(물론 제 눈에만 그런 것일 수도 --;) 주가 아예 없으면 궁금할 수밖에 없어서요.
    다시 한번 답변 감사드립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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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일본 라이트노벨류 순정 환타지를 구상하다가 추천으로
    「소리와 분노」를 읽었는데 와우! 스토리와 캐릭터들 끝내줘요.ㄷㄷ
    이걸 바탕으로 제가 만화 스토리를 만들고 있어요.
    주인공을 캐디를 새끈한 사고뭉치 여동생으로 바꾼 캐릭터로 정했는데
    포크너는 왜 캐디를 주인공으로 안 세웠을까요?
    너무 빤해질까바 일부러 장마다 주인공을 따로 세운거 같가도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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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캐디가 가장 핵심적인 주인공입니다. 캐디가 화자로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제가 책의 해설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포크너는 '간접적인 접근'이 더 "열정적"이라며 독자들이 캐디를 각자 상상해서 창조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직접적인 묘사보다 더욱 감동적이라는 것이죠. 사람마다 다른 미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므로 간접 묘사를 통해 각자의 상상을 충족하는 이미지를 형성하라는 것입니다. 대답이 되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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